샬롬! 성도님, 최영덕 목사입니다. 오늘은 “아이들을 받아들이는 것"이라는 주제로 마태복음 18장 5절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제자들이 '누가 크니이까?'라는 지극히 세상적인 질문을 던졌을 때, 예수님께서 어린아이를 세우시며 가르침을 주셨던 이 장면은 하나님 나라의 본질을 보여주는 매우 중요한 대목입니다.
성도님께서 보내주신 핵심 생각과 기도문을 바탕으로, 이 말씀에 담긴 더 깊은 의미를 함께 나누고 우리 삶에 적용해 보겠습니다.
성경 구절
- 개역개정: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마태복음 18:5)
- 새번역: "또한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이 하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하는 것이다."
- NIV: "And whoever welcomes one such child in my name welcomes me."
- 원어 (헬라어):
- ὃς ἐὰν δέξηται παιδίον τοιοῦτο ἓν ἐπὶ τῷ ὀνόματί μου, ἐμὲ δέχεται.
- (음역: 호스 에안 데세타이 파이디온 토이우토 헨 에피 토 오노마티 무, 에메 데케타이)
-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와 같은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하는 것이다."
학문적 해석
- 문맥적 배경: 마태복음 18장은 '공동체 설교' 또는 '교회 설교'라 불리는 부분입니다. 이 장 전체는 천국 백성들이 모인 공동체가 어떤 원리로 운영되어야 하는지를 다룹니다. 시작은 제자들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1절)라는 질문입니다. 이 질문은 권력과 서열에 대한 세상적 가치관을 그대로 반영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한 어린아이를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이 세상과 어떻게 다른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주십니다.
- 원어 분석: 여기서 '영접하면'으로 번역된 헬라어 동사는 '데코마이'(δέχομαι)입니다. 이 단어는 단순히 손님을 맞이하는 행위를 넘어, 마음을 열어 환대하고, 기쁘게 받아들이며, 공동체의 일원으로 인정하는 적극적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어린아이'(παιδίον, 파이디온)는 당시 사회에서 법적 권리나 사회적 지위가 전혀 없는, 가장 연약하고 무력한 존재를 상징했습니다. 따라서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한다"는 것은 세상적인 기준으로는 아무런 유익도, 명예도 가져다주지 않는 존재를 귀하게 여기고 받아들이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 신학적 의미: 성도님께서 짚어주신 대로, 이 말씀은 이중적인 의미를 지닙니다.
- 문자적 의미: 예수님은 실제로 어린아이들을 인격적으로 존중하고 사랑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아이들을 꾸짖으며 내쫓으려 할 때 분노하시며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사람의 것이니라"(마 19:14)고 말씀하신 것은 이를 분명히 보여줍니다.
- 은유적 의미: 더 나아가, '어린아이'는 공동체 안에서 사회적으로 무력하고, 가난하며, 연약한 성도들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이러한 '작은 자'를 대하는 태도가 곧 예수님 자신을 대하는 태도라고 말씀하십니다(마 25:40 참조). 즉, 교회의 건강성은 얼마나 화려한 건물이나 많은 헌금, 높은 사회적 지위를 가진 사람들이 모였느냐가 아니라, 가장 연약한 자들을 어떻게 대우하고 있는가로 판가름 난다는 것입니다.
쉬운 풀이
한 나라의 대통령이 어느 마을을 방문했다고 생각해 봅시다. 사람들은 모두 대통령에게 잘 보이려고 애쓸 것입니다. 그런데 대통령이 수행원들이나 마을 유지들은 제쳐두고, 길가에서 혼자 놀고 있는 남루한 아이에게 다가가 무릎을 꿇고 눈을 맞추며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이 아이를 환대하는 것이 곧 나를 환대하는 것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사람들은 큰 충격을 받을 것입니다. 대통령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바로 그런 일을 하신 것입니다. 제자들은 하나님 나라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할 생각에 들떠 있었지만, 예수님은 가장 '낮은 자리'에 있는 어린아이를 가리키셨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를 영접하는 것이 곧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 자신을 영접하는 것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이 가르침은 우리의 가치관을 완전히 뒤집어 놓습니다. 성공과 힘을 숭배하는 세상의 방식이 아니라, 낮아짐과 섬김이 하나님 나라의 방식임을 보여주는 충격적인 실물 교육인 셈입니다.
인사이트
오늘날 우리 주변의 '어린아이'는 누구일까요? 문자 그대로는 우리 가정과 교회의 다음 세대 아이들입니다. 우리는 그들을 미래의 일꾼으로만 보거나, 때로는 예배의 '방해꾼'으로 여기지는 않습니까? 예수님은 그 아이 하나하나를 자신과 동일시하며 영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더 넓게는, 우리 공동체 안에서 목소리가 작고, 내세울 것이 없으며, 도움을 주기보다 받아야 하는 이들이 바로 예수님이 말씀하신 '어린아이'입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성도, 장애를 가진 형제자매, 공동체에 잘 섞이지 못하고 외로워하는 사람, 이제 막 신앙생활을 시작하여 모든 것이 서툰 새 신자...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나에게 유익을 줄 수 있는 사람, 나와 코드가 맞는 사람에게 끌리지는 않습니까? 오늘 주신 기도문처럼, 나의 이기적인 욕망 때문에 사람들을 판단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 '작은 자'를 영접하는 자리에 바로 주님께서 함께하십니다.
묵상과 적용: 가장 작은 자를 통해 예수를 만나다
제자들의 질문은 솔직했습니다. "주님, 우리 중에 누가 가장 큰 자입니까?" 그들은 3년간 예수님을 따라다녔지만, 여전히 세상의 성공 논리, 힘의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안에서조차 더 높은 직분, 더 많은 인정, 더 강한 영향력을 추구하려는 유혹을 받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시선을 완전히 다른 곳으로 돌리십니다. 화려한 왕관이나 높은 보좌가 아닌, 작고 힘없는 어린아이에게로 말입니다. 그리고 선포하십니다. "이 아이를 받아들이는 것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 나라의 가치 체계가 세상과 어떻게 근본적으로 다른지를 보여주는 혁명적인 선언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이러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제적으로 풀어냅니다. 야고보서 2장 1-5절은 교회에 들어온 부유한 자와 가난한 자를 차별하는 행태를 신랄하게 비판합니다. 좋은 옷을 입은 부자는 상석으로 안내하고, 남루한 옷을 입은 가난한 자는 바닥에 앉으라고 말하는 것은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며,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믿음과 양립할 수 없다고 경고합니다. 이것이 바로 마태복음 18장의 '어린아이'를 내치는 현대판 모습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세상의 방식을 거슬러 '어린아이'를 영접할 수 있을까요? 잠언 3장 5-6절이 그 답을 줍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세상의 명철은 힘 있는 자와 연대하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지혜는 작은 자를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라고 말합니다. 내 계산과 판단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마음으로 사람을 바라볼 때 비로소 우리는 '어린아이' 안에 계신 예수님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19장 13-15절에서 예수님은 아이들을 축복하시기 위해 그들을 품에 안으셨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그 주님의 마음이 필요합니다. 이번 한 주, 의도적으로 우리 주변의 '어린아이', 즉 세상의 기준으로는 작고 연약해 보이는 지체에게 다가가 봅시다.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따뜻한 식사 한 끼를 대접하고, 그들을 위해 진심으로 기도해줍시다. 그 작은 섬김의 행위를 통해, 우리는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우리 주님 예수를 영접하는 놀라운 기쁨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며,
최영덕 목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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