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는 죄를 알지도 아니하신 이를 우리를 위하여
죄로 삼으사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셨느니라 — 고린도후서 5:1
신기하지요…
이 구절을 읽을 때마다 마음 한쪽이 조용히 떨려요.
하나님이 하신 일이 너무 크고, 너무 말도 안 되고, 너무 사랑 같아서요.
“죄를 알지도 못하신 분을… 우리를 위해 죄로 삼으셨다.”
이 표현은 그냥 성경적인 표현이 아니에요.
정말 말 그대로예요.
예수님은 죄라는 게 뭔지도 몰랐어요.
죄책감, 부끄러움, 숨고 싶은 마음… 그런 것조차 없던 분이었지요.
그런데… 우리 때문에.
정말 우리 때문에 그 모든 더러운 것, 무거운 것, 숨막히는 것들을
자기 어깨 위에 올려놓으셨어요.
이게 어떤 느낌인지…
가끔 이런 상상을 해요.
마치 새하얀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이 있어요.
한 번도 얼룩이 묻어본 적 없는 사람.
근데 옆에 나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진흙투성이예요.
지저분하고, 냄새도 나고, 손댈 수도 없을 만큼 망가져 있는 모습.
근데 그 흰 옷 입은 사람이 나한테 다가와서
조용히 말하는 거예요.
"괜찮아. 이거… 내가 대신 입을게."
그러더니 정말로 그 더럽고 축축한 옷을
자기가 입고,
내게는 자기의 깨끗한 옷을 입혀주는 거죠.
나는 한참 아무 말도 못해요.
왜냐면 너무 말이 안 되거든요.
내가 그런 대접을 받을 이유가 없으니까.
성경이 말하는 게 바로 이거예요.
"우리를 죄에서 깨끗하게 하셨다" 정도가 아니에요.
그보다 훨씬 더 과해요.
훨씬 더 말도 안 돼요.
“우리가… 하나님의 의가 되었다.”
이 말이 너무 커서,
진짜 내 이야기라고 믿기 어려울 때가 많아요.
내가 뭐라고…
내가 무슨 의야…
그냥 조금 덜 나쁜 죄인 정도면 다행이지 않나요?
근데 하나님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아요.
“조금 나아진 너”가 아니고,
“조금 덜 더러운 너”도 아니고,
그리스도 안에서
너는 ‘의로운 존재’다
라고 이름을 붙여버리셨어요.
어떤 날은 이 말이 참 위로가 돼요.
특히 마음이 찌그러지고
‘나 같은 사람도 괜찮을까’ 싶은 날에는 더 그래요.
예수님이 나를 대신해서 죄로 여겨지셨기 때문에
나는 예수님 때문에 ‘의롭다’ 여겨지는 거예요.
내가 잘해서가 아니고,
내가 버텨서가 아니고,
그냥…
그분이 내 자리를 대신 앉아주셔서요.
그걸 묵상하다 보면
어쩌면 우리가 믿음으로 살아간다는 건
“열심히 거룩해지려고 애쓰는 것”보다
먼저 “이미 주어진 이 사랑을 믿고 받아들이는 것”에 더 가까운 것 같아요.
오늘도요,
하나님은 우리 이름을 부르실 때
‘의롭다’고 부르세요.
우리가 그걸 믿든 못 믿든,
흔들리든, 울든, 넘어지든 상관없이요.
그래서 이 구절은
우리에게 어떤 완벽함을 요구하는 말씀이 아니라
“이미 끝난 이야기”를 들려주는 선언 같아요.
예수님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의가 되었어요.
여전히 서툴고, 여전히 약하지만…
그분 안에서는 온전히 사랑받는 존재예요.
오늘 이 진실이
조용히, 부드럽게…
당신 마음 깊은 곳에 스며들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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